공유경제가 진화하고 있다. 거침없이 외연을 확대하던 공유경제가 시행착오를 거쳐 좀더 고도화되고 상생적인 사업모델로 거듭나고 있다.

공유경제란 한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일종의 ‘협업 소비(collaborative economy)’를 말한다. 자동차나 숙박공간, 사무실, 음식, 책, 가전제품, 정보, 지식 등 공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대상이다.

세계적 공유경제 대표 기업으로는 차량공유서비스 우버(Uber)와 숙박공유 에어비앤비(Airbnb)가 꼽힌다. 택시나 리무진은 물론 일반차량까지 다양한 형태로 차량을 공유하는 우버는 창업 6년 만에 기업가치가 680억달러(82조6000억원)로 성장했다.


이는 108년 전통의 미국 대표 자동차 제조사 제너럴모터스(GM)의 시가총액 460억달러(55조8900억원ㆍ15일 현재)를 넘어선 것이다. ‘소유’경제를 뛰어넘는 공유경제의 위력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우버는 그러나 진출하는 도시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택시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2014년 8월 우버엑스(택시배차서비스)에 대해 “사업용 자동차가 아닌 자가용으로 손님을 태우고 대가를 받는 행위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상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금지시켰다.

기본적으로 공유경제는 제품을 생산해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기존 사업자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유경제가 과거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 협조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한 차량 배차 서비스 ‘블랙래인(Blacklane)’. 2011년 창업한 스타트업인 블랙래인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까지는 우버와 같지만 합법적인 라이센스(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현지기업들과만 협업한다는 점에서는 우버보다 진일보했다.

한가지 가정해 보자. 당신은 생애 처음으로 낯선 나라를 방문하게 됐다. 항공권이나 호텔 예약은 비교적 쉽게 처리했지만, 문제는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것이다. 새벽에 도착한 항공편 때문에 한밤 중 안전한 택시를 탈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블랙래인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틈새시장. 블랙래인의 공동 창업주 옌스 볼토르프(Jens Wohltorf)와 프랑크 슈토이어(Frank Steuer)는 “세계 여행자들에게 믿을 만하고 안전하면서도 합리적인 차량 서비스를 공급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볼토르프는 본래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베를린 사무소 대표였다. 그가 BCG를 박차고 나와 블랙래인 창업하겠다고 결정했던 때는 공교롭게도 승진한지 막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안정적인 직장과 미래를 뒤로 하고 그는 베를린 사무실 한켠에서 오랜 친구인 슈토이어와 블랙래인 개발에 몰두했다.

볼토르프는 2009년 보스턴을 여행할 때 다른 통화(通貨)를 써야 하고, 영수증을 받기도 받기 어려우며, 불친절한 택시기사 때문에 불편을 겪었던 일화를 프랑크와 얘기하다 블랙래인 초기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됐다. 베를린공과대학(TU) 출신인 프랑크 슈토이어는 볼토르프의 전화 한통에 미국으로 날아왔고, 이들은 비효율적인 산업을 표준화하는 것은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2011년 블랙래인을 출범시켰다.

블랙래인은 개인이나 법인 택시를 상대로 ‘세계 표준’ 서비스를 표방한다. 승차 거부나 바가지 요금, 난폭 운전, 라디오 볼륨을 크게 틀어 놓거나, 불필요하게 사생활을 침해하는 대화 등 표준화 되지 않는 택시 서비스를 사전에 차단한다. 모든 운전자가 전문 서비스 교육을 받고 대부분의 도시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요금은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앱으로 한시간 전, 수주 전 혹은 수개월 전 예약할 수 있는 완전 ‘사전 예약제’로 요금을 미리 정할 수 있다.

물론 우버도 고급차량 배차 서비스인 ‘우버블랙’을 운영하고 있지만 블랙래인은 이를 더욱 전문화시켜 세계 표준 택시 서비스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발 더 나아가 블랙래인은 최근 영국 런던에서 우버 측과도 만나 각국의 운송 정책 규제 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블랙래인은 현재 60여개국 300개 도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창업 4년 만에 전세계 300개 공항에 서비스를 안착시키면서 우버나 리프트(Lyft)와 같은 경쟁업체를 넘어섰다.


블랙래인 공동 창업주 옌스 볼토르프(왼쪽)와 프랑크 슈토이어

블랙래인이 급속도로 성장한 데는 ‘미션 100(Mission 100)’이라는 프로젝트가 주효했다. 100일 안에 100개 도시에 서비스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다. 볼토르프는 “국가마다 행정절차가 다르고, 내비게이션 연결이 안되는 등 복병이 많았지만 복잡한 과정을 자동화하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했다”며 “그 결과 한 도시에 서비스를 론칭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130시간에서 30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볼토르프는 경쟁업체인 우버에 대해 “블랙래인의 비즈니스 모델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블랙래인은 요금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합법적이고 정식 허가를 받았으며 보험을 소지하고 전문적인 차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사들하고만 협업하는 이유에서다.

덕분에 기존 택시업계의 반발은 거의 없다. 오히려 택시 운전자 입장에서는 빈차로 돌아다니는 시간을 줄여 기름값을 아끼고 소득을 올릴 수 있어 오히려 “환영하는 ‘동료들’이 늘고 있다”고 볼토르프는 전했다.

게다가 공항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이용하는 고객을 집중적으로 겨냥함으로서 제휴업체의 폭을 크게 넓혔다. 유럽의 경우 여행 대기업 아마데우스(Amadeus), 미국 익스페디아(Expedia), 영국 렌터카 업체 허츠(Hertz),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 등이 여행 패키지와 연동해 블랙래인과 제휴하고 있다.

볼토르프는 “블랙래인은 여행 체인에 없었던 연결고리를 만들어 여행 스트레스를 줄이는게 목표”라며 “앞으로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와 중동, 남미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블랙래인의 성장성에 주목해 굴지의 기업들의 투자도 이어졌다.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를 보유한 독일 자동차 제조사 다임러는 1400만유로(185억원)를 블랙래인에 투자했다. 볼토르프는 “미래 세대들에 차량 소유는 지금보다 덜 중요한 것이 될 것”이라며 “하루 23시간 주차상태인 자가용 대신 블랙래인과 같은 차량 공유로 변화할 것을 다임러도 알고 있기 때문에 투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블랙래인은 피릭스버스(Flixbus), 카풀링(Carpooling) 등에서 2500만유로(330억원)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2013년 당시 기업가치는 6000만유로(793억원)로 평가됐다.

블랙래인은 올해 미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6년 가장 빠르게 성장할 테크 스타트업’에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테크5 어워드(Tech5 Awards) 등에서 유럽과 독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꼽히기도 했다.

http://superich.heraldcorp.com/superich/view.php?ud=20160122000423&sec=01-7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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