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 ‘에이지 오브 애덜라인(The Age of Adaline)’엔 12월 31일 밤 샌프란시스코 하늘을 수놓는 새해맞이 불꽃놀이 풍경이 펼쳐진다. 2013년 12월 31일 저녁 샌프란시스코도 그러했다. 저녁 8시가 조금 안 된 시각, 시내는 불꽃놀이와 파티를 즐기러 나온 인파로 들썩이고 있었다. 여섯 살 중국계 소녀 소피아는 엄마 손을 잡고 남동생 앤서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텐더로인 동네를 걷고 있었다. ‘재즈의 전설’ 마일즈 데이비스가 음반을 녹음한 클럽이 있었던 예술의 거리, 낡은 방 한 칸 아파트에 가난한 아시아계 이민자 가족이 모여 살았던 동네, 홍등가가 있었고 여전히 마약 거래를 비롯한 범죄 발생이 잦은 ‘우범지대’ 텐더로인도 이날만큼은 경쾌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폴크가(Polk St.)와 엘리스가(Ellis St.)가 맞닿는 교차로 신호등이 ‘길을 건너도 좋다’는 보행신호로 바뀌자 소피아 가족은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횡단보도 쪽으로 우회전 하던 SUV 차량이 이들을 덮친 건 그때였다. 차에 부딪혀 튕겨나간 엄마와 앤서니는 크게 다쳤고, 소피아는 곧바로 숨졌다.
일주일 뒤면 손꼽아 기다려온 일곱 살 생일파티가 열릴 예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다 건너 동남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도시 유니온시티에 사는 57세 사예드 무자파. 교사인 아내와 네 아이를 둔 그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일해 왔지만 벌이가 마땅치 않자 한달 전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켜 놓고 승객의 승차 요청을 접수한 뒤 자가용으로 실어 나르는, 별도의 택시 면허 없이 자가용으로 택시처럼 영업하는 우버엑스(UberX) 운전기사가 된 것이었다. 도로는 낡고 좁은데 전차와 택시, 자가용, 오토바이, 저전거가 뒤섞이기 일쑤이고, 일방통행이 많아 운전하기 까다로운 샌프란시스코 시내. 새해를 하루 앞둔 2013년의 마지막 날, 샌프란시스코 시내 교통은 평소보다 좋을 리 없었다. 승객 한 명을 내려주고 다음 승객의 콜을 기다리며 차를 몰던 사예드는 한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세 명의 보행자를 치었다. 소피아 일행이었다.
<관련 내용을 전한 ABC7News 기사>
<관련 내용을 전한 샌프란시스코 비즈니스 타임스 기사>
우버, 그리고 보험 사각지대
현지언론 보도를 통해 재구성해 본 소피아 가족의 사고는 대체로 이와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언론을 통해 보도된 소피아의 비극은 우버와 같은 운송네트워크회사(Transportation Network Companies, TNCs) 비즈니스 모델이 안고 있는 ‘보험 사각지대’ 문제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교통사고로 누군가 다치거나 숨졌는데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 기존 ‘택시의 시대’에선 쉽게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택시 사고였다면 쉽게 예상 가능하듯 택시회사의 보험에서 장례비와 치료비 등의 보험료가 지급됐을 것이다.
우버는 왜 책임 없다 했을까
사고 이후는 이렇게 흘러갔다. 우버는 곧바로 성명을 냈다. “비극적인 사고의 희생자와 가족에게 깊은 유감과 조의를 표한다”는 문구로 시작한 성명은 “문제가 된 운전자는 사고 당시 우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며 ‘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는 문구로 이어졌다.
<우버의 소피아 사고 관련 성명>
우버에 따르면, 우버가 ‘사고 책임을 지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승객을 태우고 있거나, 승객의 승차 요청을 접수하고 태우러 가는 상황에 일어난 사고. 이 두 가지 경우의 사고에 대해선 우버가 회사보험(100만달러 규모의 영업용 보험)에서 보험금 지급을 보장하고 있었다. ‘100만달러 회사보험’은 우버와 같은 TNC 영업이 불법이라며 영업정지 명령을 잇따라 내려온 캘리포니아 주 공공유틸리티위원회(California Public Utilities Commission, CPUC)가, ‘TNC 영업을 합법으로 인정하는 조건으로 요구한 것들’ 중 하나였다.
<테크크런치의 관련 보도>
소피아의 사고가 일어나기 3개월 전인 2013년 9월 19일, CPUC는 우버 등에게 “TNC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발생하는 교통사고”에 대해 건당 최소 100만달러 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웹사이트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예컨대 우버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사고가 나면 해당 사고와 관련한 각종 비용(다친 승객 치료비 등)을 부담할 수 있도록 최소 100만달러 한도의 영업용 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했다.
우버 등은 그저 승객과 자가용 운전자를 연결시켜 주는 말 그대로의 플랫폼 사업자일 뿐이라고 밝혀왔다. 택시회사처럼 차량을 소유하지도, 운행하지도 않고, 단지 승객과 운전자를 연결시켜 주는 회사이기 때문에 보험과 같은 부담을 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논거. 하지만 주민 안전과 연관된 운송서비스를 관할하는 정부기관인 CPUC는 이런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버 등에게 2010년부터 수 차례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샌프란시스코 시도 마찬가지 조치를 취했다.
택시는 시(City)와 같은 지방정부에서 면허를 받아야 하고, 리무진이라면 주 정부기구인 CPUC에서 면허를 받아야 하는데, 아무 면허 없이 운송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CPUC가 우버 규제기관이 된 건 우버를 택시로 분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택시로 분류했다면 샌프란시스코 시가 규제기관이 됐을 것이다. 어쨌든 CPUC와 샌프란시스코 시 등이 우버 등에게 영업정지 명령을 내려도 ‘불법 영업’ 차량을 일일이 적발할 인력도 없고, 적발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해당 회사들이 영업에 실질적인 타격을 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헤더 소머빌 기자가 산호세 머큐리뉴스의 ‘테크 블로그’에 쓴 관련 글>
그런데 CPUC는 우버 등의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서 별다른 고민 없이 보험 적용 기간을 ‘차량과 운전자가 TNC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이라고 뭉뚱그렸다. 그렇게만 해 두면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을 것이다. 소피아의 사고가 발생하자 우버는 ‘TNC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이라는 조건, 즉 ‘100만달러 회사보험을 적용하는 기간’을 앞서 언급했던 두 가지 경우로 규정했다.
1)우버 운전기사가 스마트폰 앱으로 승객의 승차 요청을 수락한 시점부터 승객을 태우는 시점까지 2)승객을 태운 뒤 내려줄 때까지. 이 두 가지가 아닌 경우, 즉 ‘운전자가 우버 앱을 켜놓긴 했지만(로그온 상태였지만) 승차 요청을 기다리다가 사고가 났다면’ 영업 중이었다고 볼 수 없고, 결과적으로 회사보험을 적용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소피아의 경우, 당시 운전하던 사예드가 우버 앱을 켜놓았지만 승차 요청을 접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 중이 아니었고, 회사보험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고는 유감이지만 우리 책임은 없다’는 성명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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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블룸버그
우버 운전엔 영업용 보험이 필요하다?
소피아 일행의 사고에 대해 우버가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자 남은 건 운전자였던 사예드가 들어 둔 일반 자동차보험이었다. 우버, 리프트(Lyft) 같은 업체는 사업 시작부터 TNC 운전기사가 되는 조건의 하나로 보험 가입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버 운전을 위해 별도의 보험에 가입하라는 건 아니었다. 자가용을 몰고 다니려면 의무적으로 기본적인 보험(운전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이를 배상하는 내용의 보험,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내 차를 합법적으로 몰고 있는지’를 증명하라는 의미였다. 사고가 나면 운전자 개인보험에서 처리하면 된다는 논리이기도 했다. 승객과 운전자를 만나게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비즈니스모델이기 때문에 양측을 연결시켜 준 뒤 일어나는 일은 책임 범위를 벗어난다고 해석했다.
개인이 자기 차를 몰다가 사고가 나면 (그가 가입한) 자동차보험으로 처리하면 된다. 출퇴근이나 가족여행 등의 개인적인 용도로 차를 몰다가 사고가 났다면 당연히 그렇게 처리하면 되겠다. 문제는 자가용으로 영업을 하다가 사고가 났을 경우다. 원칙적으로 돈을 받고 승객을 실어 나르는 영업을 하려면 일반 자동차보험이 아니라 가격이 훨씬 비싼 영업용 자동차보험을 들어야 한다. 일반 자동차보험 약관이 ‘영업용 운전’은 보험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용도로 자동차를 사용한다고 보험에 가입하고 사실상 택시영업을 하다가 사고를 내면, 보험사가 당초 계약대로 보험금을 주지 못하겠다고 버텨도 달리 구제를 받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소피아가 다니던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사고 직후 소피아의 장례비용과 엄마 남동생 병원비에 보태 쓰라고 3만4000달러를 모금해 전달한 건 소피아 가족이 보험 적용을 받기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정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영업용 보험(commercial insurance)이 어떤 경우에 필요한지 밝혀놓은 캘리포니아 자동차국(DMV) 웹사이트>
<소피아의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모금한 웹사이트>
어디 한 군데에서 보험금도 받지 못하게 된 소피아 가족은 지난해 1월 ‘불법행위로 인한 사망’, ‘부주의’ 등의 혐의로 우버와 사예드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근거 중엔 ‘스마트폰 우버 앱이 운전자의 집중을 방해하도록 만들어져 타인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고 책임을 우버에게도 물은 것이다. 그리고 11개월 뒤 검찰은 자동차로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사예드를 기소했다. 법원에 사예드를 처벌해달라고 공식 요청한 것인데, 다만 ‘의도가 없고, 부주의 운전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범죄로 분류했다. 우버에 대한 기소는 없었다. 그리고 소피아 가족은 현재 이번 사고와 관련한 의료비 20만달러를 우버 측에 요구하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은 사예드 기소를 계기로 소피아 사고의 배경을 다룬 기사를 게재했다.
<타임 관련 기사>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8215710&cloc=rss|news|total_list